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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월) 말씀 묵상(예레미야 44장 1~1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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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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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9일(월) 말씀 묵상
본문 : 예레미야 44장 1~14절
(1)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들,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멤피스와 상 이집트에 사는 유다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다.
(2)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 내린 모든 재앙을 너희가 분명히 보았다. 보아라, 그 성읍들은 오늘날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되었다.
(3)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도, 너희도, 너희 조상도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며 섬김으로써, 나를 노하게 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4) 나는 나의 종 예언자들을 너희에게 모두 보내고, 또 거듭하여 보내면서 경고하였다. 제발 이렇게 역겨운 일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것은 내가 미워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5) 그런데도 그들은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면서, 악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6) 그래서 내가 나의 타오르는 분노를 퍼부어서,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을 불태웠고, 그래서 그곳들이 모두 오늘날과 같이 폐허와 황무지로 바뀌어 버렸다."
(7)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하나님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나 주가 말한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렇게 큰 악을 행하여, 너희 자신을 해치고 있느냐? 너희는 유다 백성 가운데서 남자와 여자와 어린 아이와 젖먹이들까지 다 죽게 하여서, 너희 가운데 살아 남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할 작정이냐?
(8) 너희는 왜 너희 손으로 만든 우상으로 나를 노하게 하며, 너희가 머물려고 들어간 이집트 땅에서까지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살라 바쳐서 너희 자신을 멸절시키며, 세상 만민에게 저주와 조롱의 대상이 되려고 하느냐?
(9) 너희는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저지른 너희 조상의 죄를 벌써 잊어버렸느냐? 그리고 유다 왕들의 죄와 왕비들의 죄와 너희의 죄와 너희 아내들의 죄를 다 잊었느냐?
(10) 그들은 이 날까지 뉘우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에게 준 나의 율법과 율례를 지키지도 않았다.
(11) 그러므로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였다. 내가 유다 백성을 모두 멸종시키겠다.
(12) 유다에서 살아 남은 사람 가운데서, 이집트 땅에 가서 머물기로 작정한 자들을 내가 없애 버리겠다. 그들은 모두 이집트 땅에서 멸망할 것이다. 전쟁과 기근으로 망할 것이다. 가장 낮은 사람부터 가장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과 기근으로 죽을 것이며, 원망과 놀라움과 저주와 조소의 대상이 될 것이다.
(13) 내가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예루살렘을 벌한 것과 같이, 이집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벌을 내리겠다.
(14) 유다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집트 땅에 머물려고 들어간 자들 가운데는, 살아 남거나 죽음을 모면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돌아가서 살기를 갈망하는 유다 땅으로는, 돌아갈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몇 명의 피난민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1. 본문 이해
- 애굽으로 내려간 유대인들은 믹돌, 다바네스, 놉, 바드로스 등의 지방에 흩어져 살았다(1절). 그들에 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근본 원인이 우상숭배 때문이었다(2~3절).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노를 격발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은 줄곧 선지자들을 보내어서 거듭하여 경고하였다(4절). 그것은 역겨운 일이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5절). 그리하여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려 불태우고 폐허와 황무지가 되게 만든 것이다(6절).
-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 애굽으로 내려간 유다 백성들이 동일한 죄악을 답습한다. 이것은 자멸하는 행위이며, 나아가 자녀 손들마저 모두 죽게 하여 대를 끊어버리게 만드는 일이며, 세상 만민에게 저주와 조롱거리가 되는 첩경이다(7~8절). 유다의 비극적인 역사를 통해서도 깨닫지 못하는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백성들이었다(9절). 그래서 그들은 조상들의 죄를 답습하여 그러한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고 말씀에 순복하지 않았다(10절).
- 그리하여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살고 있는 그들마저도 모두 멸절시켜 버리실 것이고, 원망과 놀라움과 저주와 조소 거리가 되게 만드실 것이라고 경고하신다(11~12절). 예루살렘과 유다에 임하였던 동일한 재앙이 애굽에도 임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하여 살아남아서 고향으로 돌아올 자는 거의 없다(13~14절).
2. 나의 묵상과 적용
- 조지 산타야나는 말하기를,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자는 과거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인간사는 선대의 그것을 닮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 사건들이 그때 살던 사람이든 지금 사는 사람이든 동일한 성정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고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그로써 그것들은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역사를 잊어버린 자에게는 반성이 없다. 반성이란, 모든 지식 행동의 총결산인 동시에 또한 새로운 시작이다. 이것이 없게 되면, 진보와 성장, 성숙은 기대하기 어렵고 대신 불행한 과거의 역사만을 답습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님의 선민들의 역사가 불행히도 그러했다. 그들은 과거 선조들의 역사에 대한 통찰과 반성이 없었다.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했다는 말이다.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 없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만의 문제인 것일까? 우리는 유럽 교회가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유럽 교회의 전철을 되밟아가고 있는 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교회가 자정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 어떠한 결과가 나타났는지 반복되는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교회는 왜 그러한 것들을 잊고 사는 것일까? 우리의 과거는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근거이며,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지혜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과거를 통한 ‘배움’이 없다면 그건 어리석음이며 비극에 다름 아니다. 오호통재라. 이것이 바로 여전한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많이 나아지고 좋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일상에서 이러한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과거를 돌아보며 뼈저린 반성과 돌이킴으로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의 역사 내내 큰 골칫거리였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늘 이 문제로 곤욕을 치르곤 했다. 이러한 우상숭배의 배경에는 풍요와 누림에 대한 무한한 탐욕이 있다. 유목민으로 살아오던 그들이 가나안의 풍요로운 농경문화를 접했을 때 그들이 받았던 충격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신들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고,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누리는 풍요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우상을 제거하기란 불가능이다. 현대의 우상은 더욱 교묘한 모습으로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상 같아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현대인의 경계심을 허물어버리고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와 있다. 하나님으로만 충만해야 할 마음속에 온갖 것들이 다 들어와 뒤섞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속의 탐욕을 부추기곤 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영적 분별력을 가지지 못하면 우상숭배의 늪에서 헤어날 길이 없게 된다. 우상은 그 생명력이 대단하다. 마치 잔디밭의 민들레 같다. 아무리 잘라내어도 소용 없다. 뿌리째 뽑아내어 죽이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오죽했으면 우상숭배로 인하여 나라가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으로 내려간 백성들이 또 다시 우상숭배에 심취하며 살게 되었을까? 그러므로 지금 내 속에 기생하고 있는 우상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하겠다. 아직도 뿌리가 제거되지 않은 우상은 있지나 않는지도 세밀히 살펴야 하겠다. 주님, 내 속에 숨어 있는 우상을 찾게 하시고,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 애굽으로 내려간 백성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들만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녀 손들까지 멸절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음을 본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나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부모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도록 만드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저주의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녀들이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 걸림돌 역할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주님, 제가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에게 축복의 통로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신령한 복들이 내 자식과 손자에게까지 풍성히 전달되기를 진실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제가 밑거름이 되어 아들의 미래 목회에 큰 유익이 있기를 진실로 소원합니다. 아들에게 복을 물려주는 복덩어리 인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온전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며, 하늘의 복을 물려주는 아비가 되게 하옵소서. 다윗처럼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라고 하는 유언을 남길 수 있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만에 하나라도, 내 자식에게 저주의 통로가 되거나 걸림돌이 되는 인생을 살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는 아비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