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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월) 말씀묵상(사도행전 19장 21~41절)
darling0691   2018-02-20 1047

2018년 2월 19일(월) 말씀묵상
본문 : 사도행전 19장 21~41절

(21)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마음에 작정하고 "나는 거기에 갔다가, 로마에도 꼭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그래서 자기를 돕는 사람들 가운데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자기는 얼마 동안 아시아에 더 머물러 있었다.
(23) 그 무렵에 주님의 '도' 때문에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다.
(24)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은장이가 은으로 아데미 여신의 모형 신전들을 만들어서,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돈벌이를 시켜주었다.
(25) 그가 직공들과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이 사업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26) 그런데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바울이라는 이 사람이 에베소에서뿐만 아니라, 거의 온 아시아에 걸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을 설득해서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27) 그러니 우리의 이 사업이 명성을 잃을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도 무시당하고, 또 나아가서는 온 아시아와 온 세계가 숭배하는 이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말 위험이 있습니다."
(28)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29) 그래서 온 도시는 큰 혼란에 빠졌고, 군중이 바울의 동행자들인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서 한꺼번에 극장으로 몰려 들어갔다.
(30) 바울이 군중 속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제자들이 그것을 말렸다.
(31) 바울에게 호감을 가진 아시아의 몇몇 고관들도 사람을 보내서, 바울에게 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32) 극장 안에서는, 더러는 이렇게 외치고, 더러는 저렇게 외치는 바람에, 모임은 혼란에 빠지고, 무엇 때문에 자기들이 모여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33) 유대 사람들이 알렉산더를 앞으로 밀어내니, 군중 가운데서 몇 사람이 그를 다그쳤다. 알렉산더가 조용히 해 달라고 손짓을 하고서, 군중에게 변명하려고 하였다.
(34) 그러나 군중은 알렉산더가 유대 사람인 것을 알고는, 모두 한 목소리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외쳤다.
(35) 드디어 시청 서기관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나서 말하였다. "에베소 시민 여러분, 우리의 도시 에베소가 위대한 아데미 여신과 하늘에서 내린 그 신상을 모신 신전 수호자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36)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여러분은 마땅히 진정하고, 절대로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37) 신전 물건을 도둑질한 사람도 아니요 우리 여신을 모독한 사람도 아닌 이 사람들을, 여러분은 여기에 끌고 왔습니다.
(38) 그러므로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를 걸어서 송사할 일이 있으면, 재판정도 열려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당사자들이 서로 고소도 하고, 맞고소도 해야 할 것입니다.
(39) 여러분이 이 이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은 정식 집회에서 처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40) 우리는 오늘 일어난 이 일 때문에, 소요죄로 문책을 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요를 정당화할 수 있는 아무런 명분이 없습니다."
(41) 이렇게 말하고서, 그는 모임을 해산시켰다.

1. 본문 이해
- 바울은 일, 이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많은 사역의 열매들을 거두고 교회들을 개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다. 그는 현실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않고 다시 새로운 선교의 계획들을 세운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그리고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비전으로 불타게 된다(21절). 그는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내고 자신은 얼마간 더 아시아에 머물러 있었다(22절). 고린도후서 16장 8~9절을 보면, 바울이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에베소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다(23절).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은장이가 동종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24절). 명분은 아데미 여신의 존엄성을 위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바울로 인하여 그들의 생업에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25~27절).
- 사람들은 격분했다(28절). 에베소 도시 전체에 큰 소요가 일어났다. 군중들은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체포하여 극장으로 몰려갔다(29절). 가이오나 아리스다고의 행적이나 인적사항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된 곳이 없다. 가이오는 소아시아의 더베 출신으로서 고린도에서 바울이 직접 세례를 준 자였고(고전 1:14), 바울의 마지막 선교여행에 동행했던 자였다(20:4). 후에 사도 요한에게도 사랑과 신뢰를 받을만큼 신실한 믿음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 추정된다(요삼 1). 아리스다고는 마게도냐 지역의 데살로니가 사람이다(행 20:4, 27:2). 그는 바울의 이차 선교여행 때 믿고 바울의 삼차 선교여행에 동참한 무명의 평신도였다. 성경에는 그 이름이 총 다섯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바울과 같이 다니는 자’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늘 밀착 동행했던 동역자였다(골 4:10, 몬 1:24).
- 바울이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체포되어 극장으로 끌려간 소식을 듣고 즉시 거기로 가려고 했지만 제자들과 몇몇 관리들이 극구 만류한다(30~31절). 바울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바울이 거기 나타나게 되면 문제만 더욱 커질 우려가 있었기에 만류한 것이고 바울도 이를 받아들인다.
- 극장에 모인 군중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각기 다른 의도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떼로 몰려든 것이다(32~34절). 생계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보복하려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데미 여신에 대한 종교심 때문에 온 사람들, 혹은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바울을 해하려고 하는 유대인들도 있었다. 나아가 아무 것도 모른 채 군중심리에 이끌려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혼란스럽기만 할 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고소할 의견조차 정리하지 못했다. 이때 서기장이 나타나 흥분한 군중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소요를 진정시킨다(35~41절). 서기장은 기독교를 믿지는 않았지만 바울과 그 일행이 에베소 시에서 그 어떠한 위법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이다.

2. 나의 묵상과 적용
- 제대를 앞둔 군인들을 예전에는 ‘갈참’이라고 불렀다. ‘갈참’이 되면 대부분 훈련도 열외가 되고 그저 몸조심하면서 제대하는 날까지 시간만 때운다. 어디 군대만 그럴까? 일하던 곳을 정리하고 떠날 시점이 되면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보편적인 사회 현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에는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없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감당해 나가야만 하는 것이 바로 사명이다. 그런 면에서 바울의 사역의 자세는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고 여겨진다. 사역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조금도 식어지지 않는 그의 모습에 진심으로 탄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그였기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후 4:7)고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식어지지 않는 열정이 나에게도 넘쳐나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내가 이 교회에서 사역을 마무리하게 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영부영 때우는 목회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그러한 열정을 가지고 하는 목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라 여겨진다. 이번 한 주간도 더욱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망한다. 주님, 사역과 사명에 대한 열정으로 더욱 불타는 인생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 바울에게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다. 유명인이든 무명인이든 간에 그들의 협력과 동역으로 인하여 바울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동역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교회를 위해서는 우선 리더들을 나의 좋은 동역자들로 세워주시기를 바라고, 나아가 목회의 모든 부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역 목회자들도 세워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감사한 것은 이번에 정 선교사님 내외분이 살기 좋은 휴양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와서 남은 여생을 나와 함께 동역하도록 하나님이 마음을 주신 것이다. 아름다운 동역을 기대해 본다. 나아가 이번 여름 중남미선교회의 단기선교는 내가 직접 맡아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나를 도울 수 있는 자원하는 동역자들 또한 하나님이 붙여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처럼 우리 교회를 세워감에 있어서, 그리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중남미 선교를 감당해감에 있어서 하나님이 필요한 동역자들을 많이 붙여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그리하여 더욱 힘 있게 하나님의 사역들을 감당해나갈 수 있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 데메드리오가 에베소 사람들의 종교심에 호소하여 소요를 일으키지만 기실은 돈 문제였고, 자신의 이익의 문제였다. 현대의 가장 큰 우상이 맘몬신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리라 여겨진다. 예전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90퍼센트가 넘는 청소년들이 ‘돈’을 꼽았다고 하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만 빼고는 돈으로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는 그러한 ‘황금만능시대’를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니어 보인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도 돈의 위력은 정말 대단해 보인다. “하나님도 돈 앞에서는 꼼짝 못하신다”고 하는 자조 섞인 농담이 통할 정도이다. 이러한 시대에 돈에 대해 반듯한 인생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돈에서 깨끗하지 못하거나 정직하지 못하다고 한다면 바르고 건강한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다. 특히 나와 같은 목회자는 더더욱 돈 문제에 있어서 반듯해야 한다고 믿는다. 돈 문제로 인하여 추한 모습을 보이는 목회자들을 주변에서 더러 보게 되는데 정말 슬프다. 나 역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늘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돈 문제로 인하여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돈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그러한 허약한 교회가 되지 않도록 잘 세워나가고 싶다.
- 서기장의 변론을 통해서 바울과 그 일행이 그곳에서 이 년여 동안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바울 일행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올인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에 합당한 덕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본이 되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비난 받게 되는 많은 경우를 보면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걸 맞는 삶이 뒤따르지 못할 때이다. 그래서 말은 잘 하는데 반해서 삶이 뒤따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쟁이는 물에 빠져 죽으면 입만 동동 뜬다”라는 조롱 섞인 말들을 심심찮게 듣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목사로서 나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의 상당 부분이 바로 우리 목회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목회자들이 작금의 한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의 주범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참으로 아픈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성도들에게 말만 하는 목사가 아닌 삶으로 본이 되고 증명하고 보여주는 목사가 되기를 진실로 원한다. 늘 내 삶을 돌아보며, 정직함과 진실됨으로, 그리고 거룩함으로 아름다운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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