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분류-신앙생활/영적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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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짓는다는 것

Preaching the Luminous Word: Biblical Sermons and Homiletical Essays

지은이 : 엘렌 데이비스·오스틴 매키버 데니스 I 옮긴이 : 윤상필 I 발행일 : 2026-06-22

136X205 I 568쪽 I ISBN 978-89-325-5081-7

정가:36,000원 → 할인가 : 32,400(10% 3,600원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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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 책 소개  
말씀 본연의 빛을 살려, 청중의 마음에 성경 본문이 생생하게 말을 건네는 설교란 어떤 모습일까? 이 책에는 그러한 역할을 유감없이 보여 주는 51편의 설교와, 예언적이고 성경적인 설교를 위한 저자의 탁월한 통찰이 녹아 있는 5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섬세하고 깊이 있는 주해를 바탕으로 독창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성경을 해석해 온 구약학자 엘렌 데이비스는 이 책 『희망을 짓는다는 것』에서 자신의 학문적 정수를 설교라는 가장 대중적인 언어에 담아냈다. 세례식, 결혼식, 장례식, 입학식, 졸업식, 사순절, 부활절, 대림절, 성령강림절 등 다양한 상황과 절기적 배경에서 전해진 이 설교들은, 천천히 성경 본문을 거닐며 우리 개인의 삶과 현대의 당면 과제들에 대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충실하게 조명한다. 

 

 

2. 차례  
추천 서문 — 스탠리 하우어워스
들어가는 글 — 예화에 대한 염려를 버리다

 

피조물 됨은 먹는다는 것입니다 · 창세기 1장
철저한 신뢰 · 창세기 22장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 출애굽기 3:1-15
에세이 — 삶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증언하기: 구약 설교
만나 경제 · 출애굽기 16장
천국을 아름답게 하기 · 출애굽기 28:1-4a, 15-23, 28-30, 36-38; 요한복음 1:1-18
살아 있는 성상 · 출애굽기 34:1-9, 28-35; 시편 111편; 에베소서 3:7-21
모세의 겸손 · 민수기 12장
온전한 사랑 · 신명기 6:4-13
안식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이기 · 여호수아 1:1-18; 마가복음 2:1-22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다 행하겠습니다” · 룻기
하나님의 집 · 사무엘하 7:1-17; 마가복음 6:30-46; 히브리서 3:1-6
엘리야산에서 바라본 풍경 · 열왕기상 17:1-24; 마가복음 9:2-8
거룩한 우정 · 열왕기하 2:1-12; 시편 50:1-6; 마가복음 9:2-9; 고린도후서 4:3-6
동물을 축복하며 · 욥기 12:7
눈을 뜨고 기도하라 · 욥기 42:1-6, 10-17; 마가복음 10:46-52
에세이 — 거룩한 설교: 윤리적 해석과 실천적 상상력
반석이라는 삶의 밑바닥 · 시편 27편
이 나무를 흔들라 · 시편 34편
하나님을 갈망함 · 시편 63편
강인한 찬양 · 시편 73편
죄라는 모순 · 시편 103편
조셉 타반 라수바를 기억하며 · 시편 116편
찬양에서 얻는 힘 · 시편 145편; 사도행전 2:1-13
에세이 — 지혜에 놀라다: 잠언 설교하기
희생을 배우다 · 잠언 3:11-26; 고린도전서 1:10-31
얼굴을 마주 보다 · 잠언 27:19
지혜와 그 지혜가 하는 일 · 잠언 31:10-31; 마태복음 11:16-19, 28-30
비가 그친 뒤에 · 아가 2:10-12
에세이 —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사야서를 소명의 책으로 설교하기
나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 이사야 6장
존 데이비스 시니어를 추모하며 · 이사야 42:1-9
우리 골육의 치유 · 이사야 58:1-12; 마태복음 5:13-16
불을 삼키다 · 예레미야 1:4-9
죄로 병든 마음을 치유하다 · 예레미야 4, 31장; 골로새서 1:11-20
탄식을 배우다 · 예레미야 14장
희망을 짓는다는 것 · 예레미야애가 1:12; 3:1-8, 16-24
삶이 설교가 되는 결혼 · 호세아 2:16-20; 시편 67편; 요한복음 15:8-17; 빌립보서 2:1-11
심판이라는 복된 소식 · 아모스 5:18-24
긍휼의 건축가 · 요나 3-4장
절기의 긴장 · 스가랴 14:4-9; 누가복음 21:25-31
에세이 — 삼위일체 하나님을 증언하는 설교
별을 응시하는 사람들 · 마태복음 2:1-12
신실한 애통 · 마태복음 5:1-12
거북한 믿음 · 마가복음 5:22-24, 35b-43
또 한 명의 낭비하는 자 · 누가복음 16:1-9; 사도행전 4:32-37
“여기 너희에게 먹을 것이 좀 있느냐?” · 누가복음 24:36b-48
영광을 향해 밀어붙이기 · 요한복음 11:32-44
믿음을 배우다 · 요한복음 20:19-31
하나님의 드라마 · 고린도전서 11:23-26
공동체의 비밀 · 에베소서 4:1-7, 11-16
완전해지는 길 · 빌립보서 3:4b-4:9
창조의 식탁 · 골로새서 1:15-29
부활절의 망명객들 · 누가복음 24:13-35; 베드로전서 1:1-2, 14-23
어린양을 예배하라 · 요한복음 21:1-19; 요한계시록 5:11-14

 

해설 — 오스틴 매키버 데니스
출처
성경 찾아보기

 

3. 지은이  
엘렌 데이비스(Ellen F. Davis)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비교문학을 전공(B.A.)하고, 태평양 성공회신학대학원(Church Divinity School of the Pacific)에서 목회학 석사(M.Div)를,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구약학으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유니언신학교,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 버지니아신학교에서 가르쳤으며 2001년부터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경 및 실천신학 석좌교수(Amos Ragan Kearns Professor)로 재직하고 있다.
성경 읽기를 결국 ‘사랑의 행위’로 정의하는 엘렌 데이비스는, 탁월한 히브리어 감각을 바탕으로 예술 작품을 완성해 가듯 성경 본문에 주의를 기울여 천천히 읽어 나간다. 이러한 읽기를 바탕으로 데이비스의 전작들은 탁월하고도 창의적인 성경 해석을 소개해 왔다. 이 책 『희망을 짓는다는 것』은 신구약 본문을 망라하는 51편의 설교와 5편의 설교학 에세이를 통해, 탄탄한 성경 주해와 현대 이슈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토대로 하는 데이비스의 설교자적 소명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리말로 소개된 책으로는 『성경 읽기는 예술이다』(성서유니온, 공저), 『히브리성서를 열다』, 『하나님의 진심』(이상 복있는사람), 『성서 문화 농업』(코헨)이 있다. 

 

오스틴 매키버 데니스(Austin McIver Dennis)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 있는 제일 침례 교회(First Baptist Church)의 담임목사다.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설교학 및 화해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에서 오스틴 매키버 데니스는 엘렌 데이비스의 설교 수백 편을 검토하여 51편을 선별하고, 각 설교를 시작하는 짧은 서문을 덧붙였다.

 

4. 옮긴이  
윤상필
계명대학교(B.A),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프린스턴신학교(Th.M)에서 수학한 후,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TU)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Tabula Rasa 대학의 초빙교수로, 기독교와 인문교양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하나님, 이웃, 제국』, 『남은 자들을 위한 요한계시록』(이상 성서유니온), 『천국을 다시 묻다』, 『칼 바르트』(이상 비아) 등 다수가 있다.

 

5. 출판사 리뷰  

찬란한 말씀의 빛에서만 얻을 수 있는 삶의 모든 순간을 위한 메시지
성도들은 좋은 설교를 찾아 헤매고, 설교자들은 그런 설교를 고안하기 위해 애쓴다. 좋은 설교란 무엇인가? 설교자들은 감동적인 예화, 영감을 주는 말, 명확한 요점을 얻기 위해 안달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로 이루어진 설교가 정말 좋은 설교일까? 엘렌 데이비스는 설교의 중심에 ‘주해’를 둠으로써 성경 본문 본연의 빛을 발하게 하는 설교를 모색한다. 이 책의 들어가는 글(“예화에 대한 염려를 버리다”)에서 명망 높은 신약학자이자 설교자였던 크리스터 스텐달(Krister Stendal)과 나눈 대화는 설교의 본질에 관한 예리한 깨우침을 전해 준다. “[설교의] 목표는 설교 본문을 다시 읽을 때 그 말씀 자체가 그들에게 더 생생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의 목적은 본문이 좀 더 빛날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들어 주는 것이랍니다”(p. 35).
데이비스는 이 말처럼 설교에서 과감히 여백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책의 설교들을 읽으며 그 여백을 ‘비어 있음’으로 느낄 독자는 없을 것이다. 본문에서 시작되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통찰과,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우리 삶을 향해 말을 건네는 말씀의 여운이 독자를 촘촘히 감쌀 것이기 때문이다. 예화와 좋은 말, 3대지라는 요소를 덜어 낸 데이비스의 설교는 본문이 비추는 찬란한 빛으로 가득 채워진다. 『희망을 짓는다는 것』은 데이비스의 설교 수백 편 가운데서 엄선한 51편의 설교와, 깊이 있는 설교를 전하기 위한 통찰이 담긴 5편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이 선별 작업에는 동료 오스틴 매키버 데니스(Austin McIver Dennis)가 함께했으며, 각 설교 첫머리에는 그의 요약 서문이 붙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말씀에 대한 신뢰로 빚어낸 대담한 설교 
엘렌 데이비스의 설교는 시적인 강렬함을 지닌다. 그녀의 문장과 논리적 흐름은 조금도 상투적이지 않다. 도발적인 질문이나 의제가 설교 전체를 관통한다. 창세기 22장의 이삭을 묶은 사건을 다루는 설교 “철저한 신뢰”는 이 본문을 그저 ‘아브라함의 위대한 순종 사례’로만 읽어 온 관성적 독법에 당당히 의문을 제기한다. 또 요나서를 본문으로 하는 설교 “긍휼의 건축가”는 악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을 향해 “과연 하나님께 기준이라는 것이 있기는 합니까?”라는 해묵은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그녀의 설교가 난제로 여겨지는 본문을 다루며 이런 대담한 질문을 견지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성경 본문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한다. “설교자들이 정작 습득하지 못한 것은, 본문으로 깊이 들어가는 설교를 했을 때 사람들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들의 덕이 세워질 것이라는 확신이다”(p. 435). 그러나 엘렌은 바로 이 확신으로 설교를 써 내려갔고, 하나님은 그 신뢰에 부응하시듯 본문으로부터 마르지 않는 샘을 선사하셨다. 

 

다양한 상황과 절기적 배경에서 다뤄진 인간 삶의 총체적 주제들
설교는 성도의 삶 면면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이 책의 설교들도 그렇다. 세례식, 입학식, 졸업식, 임직식, 결혼식, 장례식과 같은 생애 주기를 아우르는 상황들은 물론 사순절, 부활절, 대림절, 성령강림절과 같은 기독교 절기를 배경으로 전해졌다. 한 가지 사례로, 이 책의 제목을 따온 2014년 성금요일 설교 “희망을 짓는다는 것”은 예레미야애가의 고통받는 시인의 목소리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상상한다. 시인의 아픔은 예수님의 것이 되어 그분의 수난을 생생하게 묘사하다가, 이내 청중을 겨냥하여 그들에게도 삶의 고통에 대한 날선 감각을 일깨워 준다. 이로써 성금요일의 수난은 독자의 삶과 연결되고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또 각각의 설교는 사랑, 우정, 탄식, 소명, 용서, 죽음, 생태학, 대안 경제, 환대와 같은 개인 삶의 다양한 주제와 사회적 이슈들을 고루 다루며 독자에게 지혜를 전해 준다. 창세기 1장을 다루는 이 책의 첫 설교 “피조물 됨은 먹는다는 것입니다”는 창조 기사에서 독특한 특성, 곧 땅에서 나는 먹거리에 대한 섬세한 설명을 포착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논의를 확장시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권한과 책임을 생태적 측면에서 새롭게 정의 내리기에 이른다. 잠언 말씀을 본문으로 한 결혼식 설교(“얼굴을 마주 보다”)에서는 ‘서로를 비춰 주는 물웅덩이’라는 이미지를 묵상하며 결혼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부부로 서약하는 두 사람을 축복한다. 요한계시록을 본문으로 하는 이 책의 마지막 설교 “어린양을 예배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 제도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 10주년을 기념하며,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대담하게 선포한다.

 

마침내, 희망을 짓는다는 것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추천 서문에서 엘렌 데이비스의 설교를 “돌쌓기의 명장이 빚어낸 작품”에 비유한다(p. 20). 그는 서로 다른 형태를 지닌 울퉁불퉁한 돌을 쌓아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돌이 지닌 고유한 형태와 이웃하는 돌들과의 조화를 가만히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비스는 성경 본문을 바로 그 명장의 시선으로 인내하며 응시한다. 우리는 이제 엘렌 데이비스의 안내를 따라 성경 본문 앞에 섰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우리도 성경 본문과 우리 삶을 찬찬히 바라볼 것이다. 그녀의 설교가 우아하게 쌓여 갔듯이 이 책이 조명하는 말씀들을 통해 우리 삶에 묘연해 보였던 희망은 점차 지어져 갈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이라는 경이로운 작품이 우리 앞에 드러날 것이다. 

 

6. 대상 독자  
⋅영적 울림이 있는 설교를 읽고 싶은 그리스도인
⋅삶의 모든 주제에 관한 심원한 메시지에 귀 기울이려는 성도
⋅성경 주해를 기초로 하는 새로운 설교 모델이 필요한 목회자
⋅현대의 당면 과제에 대해 성경적 통찰을 구하는 신앙인

 

7. 본문 중에서  
각 돌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을 유심히 살피면서도 이웃하는 돌들과 어우러지며 발현할 아름다움을 조망하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가만히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돌을 맞춘다는 것은 바로 그 인내심을 먹고 자란 상상력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는 비록 노련한 석공은 아니었지만 더 나은 설교자가 되었기를 소망해 봅니다. 분명한 것은 데이비스의 설교는 돌쌓기의 명장이 빚어낸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설교자로서 데이비스의 작업 방식을 조명하는 데 ‘돌쌓기’라는 비유가 왜 그토록 탁월한 통찰을 제공하는지 이제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보고자 합니다. (중략) 데이비스의 관심은 본문 안에서, 본문을 통해, 우리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본문을 읽어 내는 것입니다. 데이비스는 분명히 폭넓은 방식을 동원해 성경 본문을 읽어 왔고 그런 전문적인 읽기 방식이 설교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만, 그녀의 읽기 방식을 규정하는 것은 인내심을 갖고 긴 호흡으로 성경 본문을 찬찬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20-21쪽, 추천 서문 — 스탠리 하우어워스
    

스텐달의 이 이야기는 저에게 방향을 제시했고, 존 던의 설교에서 제가 확인한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무려 350여 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활동한 두 위대한 설교자의 증언을 통해, 저는 예화를 버리고 주해를 설교의 중심축으로 삼았습니다. 
주해는 또한 제가 성경학자로서 하는 모든 일의 중심을 잡아 주는 닻입니다. 그래서 설교와 학문, 이 둘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설교를 통해 본문의 진면모가 드러나는 선물을 받을 때, 청중의 표정에서 경탄과 기쁨과 감사가 배어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이런 즉각적 반응 덕분에 성경은 여전히 제게 찬란한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더불어 성서학자로서도 계속해서 제 역할을 하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설교가 연구와 가르침을, 저의 신앙을 지속시켜 준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성경으로 되돌아갑니다.
35-36쪽, 들어가는 글 “예화에 대한 염려를 버리다”


성경을 읽는 것이 제 주업이지만, 그렇게 긴 세월 성경을 읽었음에도 첫 장에서 먹거리를 공급해 주시는 대목에 기울여진 이 섬세한 관심을 거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알아챈 뒤에도 이것이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학술 문헌들도 그다지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현대의 전문가들이 식재료의 기원에 대해 이토록 무지하다는 사실은, 현대 문화의 사고방식과 성경 저자들이 대변하는 문화 사이의 깊고도 우려스러운 간극이 있음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차이는 이렇게 간명하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성경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먹는 일과 농사가 하나님과 관련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중략) 성경 저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음식이 핵심 신비이자 가장 중요한 신학적 관심사였습니다. 먹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과의 관계에서 중심입니다.
39쪽, “피조물 됨은 먹는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우정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필요를 다룹니다. 그러나 이런 필요와 갈망은 오늘날 우리의 일반 사회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합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이 갈망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혹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우리 안의 갈망을 어떻게 알아차려야 할지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갈망을 키워 주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 이것이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중략) 바로 이 예배와 짝을 이루는 것이 거룩한 우정입니다. 예배가 제 기능을 할 때, 곧 하나님의 현존을 갈망하기 시작하고 그 신비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동할 때, 그때 우리는 그 갈망을 알아주고 그 신비에 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와의 우정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청년 엘리사처럼 우리보다 하나님의 현존을 훨씬 더 깊이 경험하고 그 안에 거하는 데 익숙한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166-167쪽, “거룩한 우정”

 

성경의 지혜와 광고 산업 사이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둘 다 욕망을 형성하고 자극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아직 갖지 못한 것을 원하게 하거나, 이미 가진 것을 더 많이 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잠언과 잘 만들어진 광고는 모두 ‘소유의 시학’의 한 형태다. 여기서 설교자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그 욕망의 대상이 지닌 근본 성격이 완전히 대조된다는 점이다. (중략) 잠언에서 획득해야 하는 대상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무형의 것들이다. 지혜, 명철, 진리, 지식, 기술, 심지어 “마음”까지 말이다. 잠언의 현자들은 광고 산업만큼이나 부지런히 더 많은 것에 대한 욕망을 일구고 있다.
275-276쪽, “에세이 — 지혜에 놀라다: 잠언 설교하기”

 

인간이 공의를 행하는 것과 하나님이 의롭다 여겨 주시는 것 사이에서 이사야가 주목한 이 상호 연관성이 처음으로 내게 와닿은 것은, 제1차 인티파다(Intifada, 아랍어로 ‘봉기’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여 일어난 팔레스타인의 민중 봉기를 가리킨다—옮긴이) 기간 중 어느 일요일 예루살렘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들었을 때였다. 수많은 이스라엘 어린이가 목숨을 잃은 연쇄 폭탄 테러가 일어난 직후였다. 유대인들 사이에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인티파다는 한 국가가 스스로를 무고하다고 여겨 왔던 감각을 무너뜨렸고, 많은 이가 그 땅을 점령한 것에 따른 도덕적 대가가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중략) 몇 시간 동안 계속된 예배 속에서 한 노래가 거듭 울려 퍼졌다. 우리가 공통으로 품은 슬픔과 희망 속에서 자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가사는 이사야서의 단 한 구절이었다. “시온을 위하여 나는 잠잠하지 않으리라.…그녀의 ‘체데크’가 빛줄기처럼 비칠 때까지”(62:1). (중략) 우리는 예루살렘의 ‘체데크’를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다. 히브리어로 노래했기에, 그것이 우리가 행해야 하는 공의를 뜻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의롭게 여겨 주심을 뜻하는지 규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인간이 의롭게 행하기를 바라는 갈망과 하나님이 만민을 구원하고 치유해 주시기를 바라는 절박한 기다림을 명확하게 가르는 것은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336-338쪽, “에세이 —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사야서를 소명의 책으로 설교하기”

 

실라가 성령이 일하시도록 자기를 온전히 내어 준다면, 예레미야처럼 수시로 그녀는 우리의 저항 때문에 하나님이 느끼시는 고통에 그녀의 마음이 찢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실라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감히 상상조차 못 하는 일, 곧 세상의 죄와 인간 정신의 비열함 그리고 하나님에게 저항하는 우리 마음 때문에 느끼시는 하나님의 고통과 그 미어지는 사랑을 함께 느끼기 위해서 말입니다. 실라가 이 공동체의 새 부제로서 예레미야가 보여 준 그 역할을 주장할 용기를 갖도록 담대히 기도합시다. 예레미야처럼 그녀가 하나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가장 강력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보좌’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까요? 실라의 자비가 하나님에게까지 확장되어서,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리 마음을 바라보시며 느끼셔야만 하는 그 아픔을 실라가 온 마음으로 느끼는 것에서 절대 뒷걸음질하지 않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371쪽, “불을 삼키다”

 

이 말씀에서 그러하듯 희망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희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어집니다. 영원한 희망은 낙천적 성향이나 비정상적으로 높은 세로토닌 수치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전 존재를 재정향하는 꾸준한 습관으로부터 옵니다. 하루하루, 한 주 한 주, 좋은 시절과 최악의 때에, 진정한 희망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든지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돌리는 데서 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분노할 때나 당혹스러울 때나, 감사할 때나 수치 가운데 있을 때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면 희망은 지어집니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고 완전하게 돌릴 때마다 우리는 천천히 영원한 희망에 관하여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얇은 층을 더합니다.
400-401쪽, “희망을 짓는다는 것”

 

이제 이 두 이미지를 함께 마음속에 품어 보십시오. 성도들의 모든 예배를 받으시는 죽임당하신 어린양의 모습 그리고 백인 형제들을 승리하는 편으로 초대하는 데즈먼드 투투의 모습 말입니다. 이 두 이미지가 완벽하게 짝을 이룬다는 사실이 보이십니까? 이 이미지들은 동일한 복음의 진리, 곧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사실을 포착합니다. 마침내 그리고 변함없이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진리 말입니다. 하지만 오직 먼저 지는 것처럼 보임으로써만 승리하십니다. 이 두 이미지를 함께 붙드는 것이 유익한데, 왜냐하면 데즈먼드 투투 주교라는 실제 역사적 이미지가 요한이 본 하늘의 비전이 단지 죽어서 가는 천상 낙원 그 이상임을 입증해 주기 때문입니다.
541쪽, “어린양을 예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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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의 성경 해석은 수십 년간 널리 찬사를 받았지만, 이번 저작은 설교자들을 위한 유용성 면에서 이전의 글들마저 뛰어넘는다. 설교자들이 이 책에 주목한다면 근간부터 흔들리겠지만, 그들의 기초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참된 말씀 위에 있다면, 그들과 그들의 회중은 근원적으로 새로워질 것이다. 이 책이야말로 흔히 남용되는 ‘예언적’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하며, 모든 설교자의 책장 가장 가까운 곳에 두어야 한다.
플레밍 러틀리지 『예수와 십자가 처형』 저자

 

엘렌 데이비스는 설교라는 예술과 기예와 소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보기 드문 학자이자 아주 뛰어난 학자다. 세상이 분별력 있고 빛나는 말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때,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크리스타 티펫 팟캐스트 ‘온 비잉’(On Being) 총괄 프로듀서 겸 진행자

 

엘렌 데이비스의 설교에는 강렬한 친밀함, 솜씨 좋은 시적 아름다움, 깊이 있는 유희, 철저한 열정이 있다. 이는 마치 성경과 같다. 그리고 하나님과도 같다.
새뮤얼 웰스 『스탠리 하우어워스와의 대화』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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