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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지은이 : 조병수 I 발행일 : 2015-10-30

신국배판 I 396쪽 I ISBN 978-89-325-2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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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몸이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 교회의 문제와 신기하리만큼 닮아 있다. 지저분한 이유로 분쟁하고, 영적 음행뿐 아니라 신체의 음행으로 더럽혀지고, 세속화와 자유화로 신앙과 신학은 어지럽다. 『고린도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통해 조병수 교수는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이 다양한 문제들의 근원을 여러 군데서 찾지 않는다. 단 한 가지의 결핍에 주목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전 12:27)는 사실을 망각했다. 분쟁은 그리스도의 몸을 쪼개는 것이며, 음행은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며, 신학의 혼란은 그리스도의 몸을 육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의 문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역시 단 하나의 문제 앞에 서 있다. 현대 교회의 불량한 상태를 염려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고린도전서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한 몸이라”(고전 10:17)는 사도 바울 외침을 듣고 몸이신 그리스도께로 끊임없이 돌아가야 하며, 한 몸인 교회를 끝끝내 이루어야 한다.
  
2. 차례 
 
들어가는 말
 
1. 서론: 글의 시작(1:1-9)
발신자, 수신자, 기원(1:1-3) | 감사(1:4-9)
 
2. 분쟁의 소식(1:10-4:21)
분쟁의 소식과 이에 대한 권면(1:10-17) | 십자가의 도(1:18-31) | 바울의 전도(2:1-16) | 사도와 교회(3:1-4:21)
 
3. 음행의 소문(5:1-6:20)
음행의 소문과 이에 대한 권면(5:1-8) | 음행자에 대한 전편지의 입장 고수(5:9-13) | 성도 간 법정투쟁에 대한 견해(6:1-11) | 자유를 오해한 그리스도인들이 음행을 정당화하는 것을 반박함(6:12-20)
 
4. 바울의 답변1: 결혼과 부부 관계에 대해(7:1-40)
전제적인 표현(7:1-7) | 각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적용(7:8-16) | 적용의 확대: 종교적, 사회적인 면(7:17-24) | 처녀들(과 과부)에 대해(7:25-40) | 고린도전서 7장의 가르침과 관련한 문제들
 
5. 바울의 답변2: 우상 제물과 그리스도인의 권리에 대해(8:1-11:34)
지식과 사랑의 조화: 우상의 제물 먹는 일과 관련하여(8:1-13) | 사도 자신의 예(9:1-27) | 이스라엘의 예(10:1-13) | 남자와 여자(11:2-16) | 집회(11:17-34)
 
6. 바울의 답변3: 신령한 것들에 대해(12:1-15:58)
은사(12:1-31) | 사랑(13:1-13) | 방언과 예언(14:1-40) | 부활(15:1-58)
 
7. 바울의 답변4: 연보와 그 외의 일에 대해(16:1-18)
연보에 관해(16:1-4) | 바울의 여행 계획(16:5-9) | 디모데에 관해(16:10-11) | 아볼로에 관해(16:12) | 간단한 권면(16:13-14) | 스데바나에 관해(16:15-18)
 
8. 결론: 글의 마지막(16:19-24)
 
참고문헌
 
3. 지은이 소개
조병수
총신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독일 뮌스터 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Dr.Theol.)를 받았다. 신학은 교회를 위해, 신학자는 목회자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독일 유학 중에는 아헨과 부퍼탈에서 한인 목회를 했고, 귀국해서는 염광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겼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가르치면서 양재동에 그의나라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40년 가까이 성경을 연구했고 어려운 신학도 공부해 봤지만, 이제 그의 교수사역은 어떻게든 성경을 알아듣기 쉽게 전하고 가르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현재는 모교인 합동신대학원대학교의 총장으로 시무하며 후배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4. 본문 중에서
바울은 성도의 거룩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한다. 성도의 거룩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2절) 이루어졌다. 이 교회의 구성원들이 전에는 음란한 도시의 시민이었고, 천한 지위에 속한 사람들이었고(1:26 이하), 말 못하는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이었고(12:2), 유대인이었지만(1:24),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거룩함을 위한 울타리다. 예수가 울타리이므로, 이제는 아무리 멀리 가도 예수를 이탈할 수 없는 자들이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마땅히 “거룩한 자들”이라 불린다.
_서론: 글의 시작(1:1-9) 중에서
 
풀 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금 같은 작품을 내는 비결을 가르쳐주는 게 바로 세상의 지혜다. 그러나 이런 지혜는 성도에게는 알맞지 않은 것이다. 성도는 세상의 지혜를 따를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18절)라고 권면한다. 성도는 세상의 지혜에 대해 미련해져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지혜로운 자가”(18절) 된다.
_분쟁의 소식(1:10-4:21) 중에서
 
이 전치사는 척도의 의미로서의 “엔”일 수 있다. 성도가 세상을 심판하게 된다는 능동자적인 의미뿐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성도를 기준치로 사용한다는 척도의 의미를 드러내는 전치사인 것이다. 성도는 세상 심판의 척도가 된다. 세상은 성도를 표준으로 하여 심판을 받는다. 물건으로 자를 재는 법은 없다. 그런데 성도가 세상 사람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면, 결국 물건으로 자를 재는 격이 되지 않는가?
_음행의 소문(5:1-6:20)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있지만 없는 것 같은” 역설적인 여러 모습의 삶이 나열된다. “하나님의 진격”에 대한 의식이 이 다양한 현재의 삶에 대한 다양한 역설을 가능케 한 것이다. 현재의 삶을 초월로 이끌고 간 것이다. “역사 너머”에 대한 인식이 역사 속의 현상적 삶을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역설의 상황에서도 초연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자신의 삶을 “그냥 지내는 것”(26절)으로 유지할 뿐 아니라, 정반대의 상태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된다.
_바울의 답변1: 결혼과 부부 관계에 대해(7:1-40) 중에서
 
그의 “직임(사명)”은 주인에게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권리가 없다. 모든 것이 주인의 손에 달려 있다. 주인이 요구하면 행할 수밖에 없다. 바울은 주님에게 노예로서 강요당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자랑도, 삯도 없다. 단지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할 뿐이다. 이러한 설명은 누가복음 17:10을 연상시킨다. 주인에게 철저히 수반 든 종은 마지막에,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_바울의 답변2: 우상 제물과 그리스도인의 권리에 대해(8:1-11:34) 중에서
 
사랑이 있을 때 방언은 비로소 조화 있는 음악이 되며, 사랑이 있을 때 예언은 비로소 질서 있는 서가가 된다(13:1-2). 사랑은 모든 믿음의, 모든 소망의, 모든 인내의 총화다(13:7). 사랑은 인간을 온전케 하며, 사람을 성숙케 하며, 인생을 분명케 한다(13:9-12). 사랑에게서 믿음이 탄생하며, 사랑에게서 소망은 양육된다(13:13). 그러므로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그것은 사랑이다.
_바울의 답변3: 신령한 것들에 대해(12:1-15:58) 중에서
 
스데바나의 집에는 아가야의 첫 열매라는 신분이 있고, 동시에 그에 걸맞은 목표와 가정적인 헌신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동역을 하며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고하는 행실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스데바나 집의 권위가 있다. 이 권위 때문에 다른 성도들이 이 집의 지도에 따르는 것이다.
_바울의 답변4: 연보와 그 외의 일에 대해(16:1-18) 중에서
 
이 편지는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1:1)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로 끝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편지의 시작이며 종결이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종결할 수 없다.
_결론: 글의 마지막(16:19-24) 중에서
 
 
5. 출판사 리뷰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은 곧 오늘 우리 교회의 문제들이며, 
사도 바울의 회신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답안이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18개월 동안 목회하여 세운 교회다. 바울에게 장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교회다. 초대교회의 유력한 인물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속해 있었고(참조. 16:19; 롬 16:3-4; 행 18:2 이하), 그리스보, 소스데네, 스데바나 등이 배출되었으며, 성경에 능한 아볼로가 교류하던 교회였다(행 19:1).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다(1:7).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앙에 있어서 오류와 탈선을 범했다. 분쟁을 정당화했으며(1:12; 11:19), 신령한 것에 무지한 채 여전히 육에 속했고(3:1), 음행에 대해 관용을 베풀었으며(5:2), 바울이 글로 가르친 내용까지 오해했다(5:9 이하). 뿐만 아니라 복음의 핵심이자 실제 사건인 부활을 부인하는 오류까지 범했다(15:12).
  고린도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 한국 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다양한 은사를 경험하고 큰 성장을 이룩했지만, 또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의 분쟁과 타락과 음행과 이단 사상에 휩쓸려 있다. 세상이 교회에게 “빛과 소금”으로서의 도움을 요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의 문젯거리들이 오늘 우리에게는 또 다른 기회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직면한 각양각색의 구설수와 의문들에 대해 세심한 답변들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고린도전서는 그저 그리스의 옛 도시에서 회람되던 고(古)문서도 아니고, 먼지 쌓인 성경 어딘가에 위치한 교리 문서도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 도착한 편지다. 우리 귀에 쟁쟁한 사도 바울의 일갈이다. 
  조병수 교수는 고린도전서를 씨줄로 분해하고 날줄로 끄러 내어, 오늘날 우리 삶의 옷감으로 촘촘하게 엮어 간다. 이 정밀하고 실천적인 성경읽기를 통해 “우리는 한 몸이라”(고전 10:17)는 사도 바울의 메시지는 오늘 우리 삶이 된다. 우리 삶은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그리스도의 몸 된 삶으로 우리는 교회를 한 몸으로 세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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