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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주) 말씀 묵상(예레미야 43장 1~13절)
darling0691   2018-11-18 478

2018년 11월 18일(주) 말씀 묵상
본문 : 예레미야 43장 1~13절

(1) 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지시하신 모든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예레미야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이르게 하신 이 모든 말씀을, 예레미야가 온 백성에게 다 일러주었을 때에,
(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고집이 센 모든 사람이, 예레미야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소.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우리가 이집트로 가서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을 리가 없소.
(3) 이것은 틀림없이,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우리를 바빌로니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주어서 그들이 우리를 죽이거나 바빌로니아로 잡아가도록 하려고, 당신을 꾄 것이오."
(4)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지휘관과 온 백성은, 유다 땅에 머물러 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5) 마침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지휘관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다가 유다 땅에서 살려고 돌아온 유다의 살아 남은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6) 남자와 여자와 어린 아이들과 공주들과,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에게 맡겨 놓은 모든 사람과, 예언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까지 데리고서,
(7) 이집트 땅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그들은 주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이 다바네스에 이르렀을 때에,
(8)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9) "너는 너의 손으로 큰 돌들을 날라다가,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의 궁 대문 앞 포장된 광장을 파고, 유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돌들을 묻어라.
(10) 그런 다음에 너는 유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사람을 보내어, 나의 종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을 데려오겠다. 그러면 그는 내가 묻어 놓은 이 돌들 위에 자기의 보좌를 차려 놓고, 그 위에 차일을 칠 것이다.
(11) 그가 와서 이집트 땅을 치면, 염병에 걸려 죽을 자는 염병에 걸려 죽고, 포로로 끌려갈 자는 포로로 끌려가고, 칼에 맞아 죽을 자는 칼에 맞아 죽을 것이다.
(12) 그리고 그는 이집트의 신전들에 불을 놓아서 신상들을 태우거나 전리품으로 가져갈 것이다. 그는 마치, 목동이 자기 옷에서 벌레를 잡아내듯이 이집트 땅을 말끔히 털고,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그 곳에서 평안히 떠나갈 것이다.
(13) 그는 이집트 땅에 있는 태양 신전의 돌기둥들을 부수고, 이집트의 신전들을 불살라 버릴 것이다.'"

1. 본문 이해
- 아사랴와 요하난을 비롯한 백성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말을 듣지 못하자 예레미야의 전하여 준 말씀을 거짓이라고 몰아붙인다(1~2절). 하나님이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다 바룩이 사주해서 그러한 거짓말을 한다고 오해까지 하였다(3절).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유다의 살아남은 자 모두, 심지어 바룩과 예레미야까지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4~7절).
- 이렇게 불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다(8절). 예레미야는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 궁 대문 앞 광장을 파서 유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돌들을 묻는 퍼포먼스를 한 다음(9절) 예언하기를,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을 보내어 애굽을 침공케 하여 예레미야가 감춘 돌 위에 보좌를 베풀고 애굽을 철저히 유린하게 만들 것이라고 하였다(10~13절). 그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애굽을 초토화시킴으로써 그들 역시 비참한 결과를 면치 못할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2. 나의 묵상과 적용
- 내가 아무리 안전하다, 괜찮다고 해도 별무소용이다. 하나님이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으신다면 말짱 도루묵에 불과하다. 나의 평안과 안전을 위해 철옹성을 쌓아 올린다고 해도 소용 없다. 하나님이 한번 후~ 하고 불어 버리시면 끝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은 모두 거짓이다. 거짓 평안이고 거짓 안정이다. 평안과 안정은 사람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이다. 여러 어려운 국면 속에서 남북 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모두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며 이 일의 진행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김정은이나 문재인 대통령이나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의 손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조국의 경제가 장기간 극심한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국에서는 여러 가지 경기부양 대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서민들이 살아가기가 녹녹지 않다. 물론,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최종 결재는 주님의 손에 달렸다. 하나님이 풀어주셔야만 되고 해결해 주셔야만 된다. 교회의 흥망성쇠도 결국 하나님의 마음에 달렸다. 우리가 이런저런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다. 개인의 모든 문제 또한 그러하다. 나의 목양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성도들과 소통을 잘 이루고, 성도들을 잘 보살피며, 또 양질의 꼴을 먹인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야만 되는 것이고, 지켜주셔야만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영주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B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스폰서의 도움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결재가 더 중요하다. 스폰서가 영주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길을 가는 것이 최선이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인 것이다. 요하난 일행이 피난처로 삼았던 애굽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은,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안전은 결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이 나의 보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영원한 보장이 되신다.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자들이여, 복 있을진저.
- 요하난 일행은 예레미야의 말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거짓’이라고 몰아붙인다. 사실 잘못은 그들이 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다름(Different)’과 ‘틀림(Wrong)’을 분별하지 못하면 낭패를 경험한다. 삶의 현장에서 이러한 어이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 되는데, 상대가 잘못되고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논쟁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제직회를 하면서 언성이 높아지고 다툼이 생기는 것도 이러한 분별을 하지 못하는 유치함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 외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 진리의 문제에는 ‘바름’과 ‘틀림’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이 최선이냐 차선이냐 하는 문제이다. 최선과 차선의 문제는 다툴 사안이 아니다. 협의하여 조정할 사안이고 조화와 선택의 사안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목양의 현장에서 성도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다투는 최선보다 화목한 차선이 낫다”는 것이다. 좀 둘러가더라도 화목하고 서로 마음을 다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지금까지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해올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앞으로 더욱 성숙한 모습의 공동체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일구이언 이부지자’라고 했다. 한입 가지고 두말 하면 아비가 둘이라는 좀 험악한 말이다. 그만큼 말에 대한 책임이 무겁다는 뜻이다. 요하난 일행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서 분명하게 이렇게 말했다. “진실하고 신실한 증인이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맹세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예언자님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예언자님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전하여 주시는 말씀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언자님을 주 우리의 하나님께 보내는 것은, 그분의 응답이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려 하기 때문입니다.”(렘 42:5~6) 그런데 지금 와서 하는 말은 딴판이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소.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우리가 이집트로 가서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을 리가 없소.”(2절)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했다. 남자는 자기가 한 말이 천금보다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의 한심한 모습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기업가와 정치인들을 믿느니 처음 만난 사람 믿겠다”, “정치인들을 믿느니 북극의 빙산이 다 녹는다는 말을 믿는 편이 낫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런데 이러한 말에 대한 무책임이 비단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면에서 그 심각성이 중대하다. 말에 대한 무책임이 사회에 보편화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도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습을 강하게 비판하던 목사가 정작 자신은 세습함으로써 세인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은퇴하겠다고 공언한 목사가 은퇴를 번복해서 교회를 파탄지경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한 해 동안 직분을 잘 맡아 섬기겠다고 약속해 놓고선 중도에 팽개쳐 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는 이들 또한 한둘이 아니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지는 것이 온당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 생각된다. 비록 그로 인해 입게 될 피해나 손해가 적지 않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자기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자가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이라 믿는다. 특히 나는 목사이고 공인이다. 하나님 앞에서나 성도들 앞에서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질 줄 아는 삶을 살아가기 원한다. 내 감정 상한다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내가 손해 본다고, 내 자존심이 상한다고 무책임한 처신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말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지는 것, 이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당연한 삶의 자세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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