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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화) 말씀 묵상(로마서 9장 1~18절) |
darling0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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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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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8일(화) 말씀 묵상
본문 : 로마서 9장 1~18절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을 힘입어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2)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3)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4)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③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5)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도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만물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6)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폐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7)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다만 "이삭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을 너의 자손이라고 부르겠다" 하셨습니다.
(8) 이것은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참 자손으로 여겨지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9) 그 약속의 말씀은 "내년에 내가 다시 올 때쯤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한 것입니다.
(10) 그뿐만 아니라, 리브가도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쌍둥이 아들을 수태하였는데,
(11)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살아 있게 하시려고,
(12) 또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하셨습니다.
(13)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한 것과 같습니다.
(14)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 하셨습니다.
(16)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17) 그래서 성경에 바로를 두고 말씀하시기를 ⑩"내가 이 일을 하려고 너를 세웠다.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나타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 ⑩출 9:16(칠십인역)
(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
1. 본문 이해
- 9장부터 11장까지는 일종의 부록과 같은 느낌을 주는 내용이지만 매우 중요하다. 구원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통하여 예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 바울은 진실된 마음으로 말을 한다고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킨다(1절). 바울에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마음의 고통이 하나 있었다(2절). 그것은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였다. 동족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으니 동족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족하겠다는 심정을 피력한다(3절).
-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특권을 소유한 특별한 민족이었다(4절).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있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을 가졌고,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약속의 말씀이 있었으며,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특권도 가지고 있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도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으로 이 땅에 오셨다(5절). 이렇게 많은 특권들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그들은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거절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에서 멀어져 있는 것을 바울은 안타까이 여기는 것이다.
-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결코 폐하여진 것은 아니다(6절). 진정한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났다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인 것은 아니고(6절), 이스마엘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인 것도 아니다(7절). 오직 이삭에게서만 난 영적인 자녀, 그만이 약속의 자녀이며 참된 자손인 것이다(7~8절). 이삭과 이스마엘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삭을 택하셨다(9~11절). 이는 구원이 인간의 어떠한 행위에 근거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준다(12~13절). 다시 말하면 전직인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인 것이다.
-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두고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럴 수 없다(14절).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은 정죄와 심판의 대상이기에, 이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겨서 구원한다고 해서 전혀 억울해 하거나 불평할 이유가 없다(15절).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달린 문제이다(16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하시고,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는 도구로만 사용했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17절). 긍휼히 여길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영역이므로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가타 부타 말할 수가 없다(18절).
2. 나의 묵상과 적용
- 자기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에게서 자신이 끊어져도 좋다고 하는 말에서 그가 동족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콜롬비아에서 목회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조국을 사랑하였는가?"라고 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저술한 집사님으로부터 그 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책 제목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조국을 떠나 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들 하지 않는가? 비록 몸은 조국을 멀리 떠나와 있지만 우리 동포들의 마음은 늘 조국을 향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내 나라, 내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하면서 함께 기뻐하고, 분노하며,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조국애에서 비롯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미우나 고우나 내 민족이고, 내 조국인 것이다. 오늘날 조국의 교회들이, 조국의 목회자들이 세상의 지탄을 받고 가십거리가 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부패하고 타락하여 자정 능력까지도 다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조국의 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점차 젊은이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배척 받는 그러한 교회를 보면서 미래의 조국 교회를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들어 이곳으로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이민을 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기독교와 무관하게 살아왔거나 기독교에 대해 안티들이다. 이렇게까지 되게 된 조국 교회와 이민 교회를 보면서 눈물로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바울의 애끓는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비록 분노스러울 정도로 나를 실망시키기도 하는 조국과 교회이지만 내쳐버리거나 외면할 수 없기에 고통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 조국의 교회들을 다시 세워주옵소서. 우리 민족을 이끄는 향도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잘 감당케 하옵소서. 선조들의 순교의 피로 물든 토양 위에 세워진 조국의 교회에 다시 한 번 부흥의 은혜를 주옵소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민족에게 갈 길을 제시하며, 썩어져 가는 조국을 다시 정화시키며, 암울한 시대에 소망을 줄 수 있는 그러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생명을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러한 교회이게 하소서. 비록 만신창이가 되어있다고 할지라도 나로 낙망하지 않고 품게 하시고, 중보케 하시고, 사랑의 관심이 더욱 깊어지게 하소서. 조국의 교회에 먼저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하옵소서. 조국의 교회와 민족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 일을 위한 저의 기도가 멈추지 않게 하옵소서.
- 특권은 누리라고 있는 것이다. 누리지 못하는 특권은 더이상 특권이라 할 수 없다. 나는 어떤가? 나는 과연 하나님이 주신 특권들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혹시 내가 누리는 특권에 취하여 자만하거나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둔감한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스도인으로서 또한 목사로서 하나님이 주신 특권들을 누리되 그 특권들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교묘하게 이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영적 지도자로 세워주신 이 목사의 직분을 내 이익의 도구로 사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어제 노회 석상에서 교회 상황을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회가 개척된 후 지금까지의 교회 상황에 대해 보고를 하고 기도의 제목들을 함께 나누는 은혜로운 시간들을 가졌다. 그러면서 65세 은퇴까지 몇 년 남지 않았으므로 최선을 다해 잘 마무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기도 부탁도 드렸는데, 후에 많은 동역자들이 와서 65세 은퇴 발언은 취소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물론 그러한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교단법에도 70세가 정년이다.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65세 은퇴가 가장 적절하다 여겨진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65세 은퇴를 늘 생각해오고 있었다. 혹시 개인의 이익을 위해, 혹은 노욕으로 인해 다시 번복하여 70세까지 목회를 하겠다고 하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특권들을 누리되 어떠한 것도 사욕을 위해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구한다. 주님, 도우소서.
- 구원은 인간의 행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기초해 있음을 인하여 감사한다. 그러기에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또한 영광스러운 목회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의 앞으로의 삶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은혜와 긍휼로 나를 인도해 오셨듯이 나의 남은 생애도 그렇게 인도하여 주실 것을 기대한다. 은혜와 긍휼, 이것만이 살 길이라 믿는다. 내 목양의 현장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더욱 충만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