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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9:1-18 불의하지 않은 하나님의 선택
이종석   2018-09-18 1353

롬 9:1-18 불의하지 않은 하나님의 선택
1. 바울의 근심과 고통(1-3)
바울은 '육신의 생각을 죽이고 영의 생각을 따를 때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살므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개인 구원을 논한 후에 바울은 잠시 붓을 놓고 자기 민족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에 이방인들은 잘 믿고 따르는데 유대인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이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보인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부정하고 있으니 이스라엘의 구원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고통에 찬 근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에 지극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자로서 유대교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동족에게 복음에 대한 진리를 전하려 했지만, 유대인들은 바울을 매국노로 여겼기에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하면서 그의 진솔한 마음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입니다. 바울은 자기 민족이 구원 받는 것이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다면 받아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만큼 바울은 자기 민족을 건져야 되겠다는 뜨거운 마음이 있는 자입니다.
우리에게도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숱한 오해와 멸시 속에서도 자신의 진심을 보이려고 애쓰며 또한 진리를 말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것처럼 우리들도 이 복음의 진리를 말하는데 노력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거가 됨으로써 양심이 구속력이 적고 이 양심까지도 곡해될 수 있기에 성령님의 인도와 감화 밑에서 진리를 위반함이 없이 증거됨으로써 양심이 성령의 보충을 통하여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말합니다.
근심하는 생활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근심은 육신의 안일을 위한 근심이 아니라 민족의 구원에 관한 것으로서 로마서 9장에서부터 11장까지 계속 이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이는 이스라엘을 통한 구원의 역사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면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칭의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들이 미래 영화 될 때까지 성화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우리도 바른 국가관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야 할 한 영혼으로서 바른 삶을 살아 아버지 품에 나길 때까지 본분을 다하도록 합시다.
2. 선택받은 것만큼 중요한 것이 약속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4-8)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이방 민족들보다 신앙적으로 특별한 것은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신앙 속에서 태어났고 신앙 속에서 역사를 이루어 왔습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죄악 중에서 불러내시어 새로운 민족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의 성취로 이루어진 민족이었습니다. 또한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출 24:16, 17)을 보았고, 성막을 덮었던 영광(출 40:34-38), 지성소의 시은좌에 나타난 영광(레 16:2), 성전을 가득 채웠던 영광(왕상 8:10-11; 대하 7:1, 2; 겔 1:28) 등을 보았고, 말씀을 통한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심으로써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말씀합니다. 곧 약속의 성취이신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임을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은 육신의 자녀요, 이삭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는 이스마엘이고 약속의 자녀는 이삭입니다. 그런데 기업을 이을 자는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입니다. 이스마엘은 자기 방식, 자기 힘으로 낳은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할례(자기 힘을 끊은 것)을 행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이는 약속을 믿는 자는 할례의 표를 통하여 정체성을 잃지 않고, 변화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곧 믿음의 삶입니다. 이 믿음은 약속을 믿고 흔들림이 없이 약속 위에 세워진 신앙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롣다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영화가 되는 그때까지 변화 받는 성화의 삶이 필요합니다.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 변화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3.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시다(9-18)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생물학적 혈통에서 태어난 자녀라고 해서 모두가 정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하면서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게 됨을 말씀하면서 약속의 예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말씀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합니다. 또 한 예가 리브가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심으로써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는 하나님의 미움을 나타내는 감정으로, 하나님의 불의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유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서 하나님의 불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다 자람을 지켜보시고 또한 그들의 업적과 공로를 다 살피신 후에 선택과 유기를 하셨다면 진정한 선택과 유기의 의미는 상실되지만, 이미 태어나기 전에 하신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선택은 야곱의 행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들을 선택하신 것, 어떤 이들을 버리시기로 한 것 모두가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절대적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에 따라 무조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어떤 외부적인 환경과 조건에도 구애됨이 없이 스스로 결정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선택하는 것은 자기 뜻이라는 '작정'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은 아브라함과 모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의 경주로 구원을 이룰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달음박질조차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내 성질도, 재능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능에 따라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로 계획하시고 그 자신의 의지대로 실행하며 그 자신의 목적하신 바대로 수행하십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계획이 좌절되고 자기 생각대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 대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죄 사함 받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율법과 계명에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을 보시고 보답하기 위해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해야 합니다. 오늘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고백이 날마다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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