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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월) 말씀 묵상(로마서 8장 31~39절)
darling0691   2018-09-17 755

2018년 9월 17일(월) 말씀 묵상
본문 : 로마서 8장 31~39절

(31)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1. 본문 이해
- 본문은 가깝게는 28~30절을 받고, 멀게는 칭의와 성화의 내용 전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일차적 의미는 부르심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영화롭게 되는 것으로 종결이 되도록 이끄심을 말한다고 했다. 본문은 이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가능케 하는 근거에 대해 밝히고 있다.
- 그 첫 번째 근거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는 사실이다(31절). 그러니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생자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 무엇인들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는가?(32절)
- 두 번째 근거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누구도 함부로 고발하거나 정죄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33~34절).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고, 나아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까지도 친히 변호하여 주시는데 어느 누가 감히 고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세 번째 근거는, 하나님이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이다(35~39절). 환난, 곤고,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협, 칼, 죽음, 삶,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결코 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넉넉히 이길 수가 있게 된다.

2. 나의 묵상과 적용
-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 이것만큼 든든한 게 또 있을까? 어릴 적, 친구들과 다투고 있을 때 아빠가 나타나면 갑자기 의기양양해지고, 자신감으로 충만해지곤 했다. 왜냐하면, 아빠는 언제나 내 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굳이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주고, 나에게 무게를 실어주는 말들을 할 때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른다. 그 반대로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는 이가 없을 때는 좌절하게 되기도 한다. 중국 단편 영화 중에 ‘44번 버스’라는 것이 있다. 중국 여성 버스 기사의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중국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 안에서 흉기를 든 승객 세 명이 버스를 강제로 세운다. 그리고 버스를 운전하던 여기사를 강간하기 위해 끌고 나간다. 버스 내에 적지 않은 승객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나서서 말리거나 제지하는 이들이 없었다. 오직 한 중년 남성만이 나서서 말리다 구타를 당하고 만다. 결국, 가해자들은 여기사를 숲으로 끌고 가서 성폭행하고 도주해버린다. 버스로 돌아온 여기사는 자신을 도와주려고 했던 승객에게 버스에서 내릴 것을 요구한다. 이 남성은 항의했지만, 기사가 출발하지 않겠다고 버티자 승객들이 강제로 그를 쫓아내 버리고 만다. 가까스로 차를 얻어 타고 돌아오는 길에 이 중년 남성은 버스사고 현장을 목격한다. 그 버스는 다름 아닌 자기가 탔던 바로 그 버스였다. 절벽에서 굴러떨어져 탑승자 전원이 사망해버린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강간범들도 나쁘지만 그걸 외면하고 모른 척하는 승객들은 더 나쁘다는 것이다. 자신의 편이 되어 지켜주지 못한 승객들에 대한 여기사의 분노와 좌절감이 결국 절벽 추락으로 모두 함께 죽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여기사를 내몬 것이다. 반면에 그녀의 편이 되어주었던 중년 남성은 그 한 번의 호의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위로요 기쁨이 아닐 수가 없다. 하물며,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신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내가 지금까지 목회를 계속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캐나다로 공부하러 왔다가 얼떨결에 이민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조기 은퇴를 하시겠다는 한 목사님의 후임으로 부임한 첫 사역지에서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 한 삼 년 동안은 그야말로 눈물로 점철된 나날들이었다. 나에 대한 온갖 유언비어들, 비아냥거림들, 중상모략들이 난무했다. 전임 목사님은 동포사회에서 인격자로 소문이 자자할 정도의 비중이 있는 분이셨다. 어린아이에게조차 반말하지 않을 정도로 예의범절이 철저한 분이셨다. 거기다 한국에서 서울대라고 하는 최고 학부까지 나온 그런 분이셨다. 그러다 보니 모두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고, 굴러온 돌 같은 나에게 관심해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때 나를 버티게 만든 유일한 것이 하나 있었다. “하나님만은 아신다.”라는 믿음이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셔서 나의 억울함을 모두 신원하여 주실 것이라고 하는 그 소망 하나로 버텨내었다. 이후의 목회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셨다. 나는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인지라 실수도 많이 했고, 잘못들도 많이 저지르곤 했다. 방향을 잘못 잡아서 낭패를 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그러한 허물과 실수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뒤에서 손가락질할 그때에도 주님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내 편이 되어주셨다. 내가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녀라는 오직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말이다. 앞으로도 언제나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도 하나님이 껌딱지가 되어 살아가기를 원한다. 나도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자식이 잘못할 때 매는 들지언정 호적을 파버리는 부모는 거의 없다. 그게 부모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나의 잘못에 대해서는 솔직하고 진실되게 용서를 구하면 된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결코 나를 정죄와 고발의 현장에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 믿는다. 사단은 끊임없이 나를 정죄하고 심판대 앞에 나를 세우려고 애를 쓰지만, 하나님의 용서와 용납이 있으시므로 내가 회개를 하기만 하면 언제나 안아주시고 모든 정죄에서 건져주신다. ‘용서’란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죄와 허물까지도 깨끗이 잊어버려 주신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의욕으로 시작하는 매일이지만 잠자리에 들 때면 주님 앞에서 부족함과 허물로 인하여 죄송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뻔뻔스럽게 목회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바로 이러한 용서와 용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나아가, 나 역시 성도나 동료들에게서 정죄와 고발의 모습을 온전히 버릴 수 있기를 원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쉽게 비판하고, 정죄하고, 고발하고, 판단할 때가 적지 않다. 이러한 나쁜 버릇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나의 ‘용서’의 폭이 더 넓어지고, 그 깊이가 더욱 깊어지는 성숙을 이루어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 인간의 사랑은 조금의 세월이 지나면 쉬이 식거나 변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욱 깊어진다. 내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그걸 잘 알 수 있다. 처음 사랑은 분명 용광로같이 뜨거웠고, 힘찼으며, 새로운 것으로 가득했던 것이 맞다. 지금 그러한 뜨거움, 힘, 새로움은 분명 그때를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퇴보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더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이 하나님의 ‘일편단심’의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변덕이 죽 끓듯 하던 나의 사랑을 이만큼 키워주시고, 더 깊은 사랑의 관계로 이끌어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 덕이다. 그러기에 때론 내가 영적으로 밑바닥을 헤맬 때도 소망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일상의 무수한 장애들이 있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시험하곤 하지만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나는 다시 일어서게 된다. 사단은 끊임없이 나와 하나님과 사랑을 이간질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쓴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든든한 사랑으로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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