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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외에 누구리요
이병철
2017-11-23
1262
(에스더 6:1-13, 나 외에 누구리요)
모르드개를 처단하고 자신은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바랐던 하만에게 그의 생각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모르드개는 왕이 존귀하게 하는 자가 되고 하만 자신은 그를 높이는 사신이 된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이 책에 언급되지 않는 이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배후에서 역사하신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그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않게 하셨고, 불면을 역대 일기 읽기로 이끄셨고, 왕의 뜰에 그때 마침 하만이 들어오게 하셨다. 하만은 왕의 심사를 전혀 알지 못했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왕이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는 마침 모르드개를 처단하기 위해 왕의 허락을 받으러 오는 참이었고 게다가 자신이 왕의 존귀를 받게 되는 행운까지 겹치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바랐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그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문제는 근본적으로 그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데도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했다는 데에 있다. 그는 왕의 최측근처럼 보이지만 왕은 그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왕은 그를 자신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자의 사신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만은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억측을 하였다. 아, 이것이 인간 패망의 앞잡이인 교만의 실체다. ‘나 외에 누구리요’라니! 나 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가! 왕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하는 왕후 에스더가 있고, 왕의 암살음모를 밝혀 그것을 예방하여 왕을 살린 모르드개도 있다. 하만, 그는 왕을 기쁘게 하는 사랑스러운 왕비도 아니며 목숨을 걸고 왕을 구한 자도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자만한다.
정작 에스더도 모르드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에스더는 왕의 총애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에게 나아갈 때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근심하였다. 그가 이렇게 나아오기 위해서는 그와 그의 동족 전체가 사흘이나 금식하며 기도했어야 했다. 그는 조금도 ‘나 외에 누구리요’ 하면서 왕을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르드개도 그러하였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보상받을 일로 주장하지도 않았고, 그러한 일이 없다고 그것을 문제시하여 자신의 권한을 누리려고 운동하지도 않았다. 그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왕 앞에 나대지 않았다.
그러므로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겸손하였고 하만은 교만하였다. 그리고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하시고 교만한 자는 낮추신다. 아, 나 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그 외에 아무도 없는 자처럼 대해주시고, 나 외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그 외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이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하만이 왕에게 존귀한 자로 높여지기를 바랐다면 그는 먼저 모르드개를 존귀한 자로 높였어야 했다. 예수의 말씀은 또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하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그렇게 대해질 것이다’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하여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행하려 했던 일이 그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다.
아, 나 외에 얼마나 선하고 의롭고 경건하고 거룩한 자가 많은가! 이 악한 세대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나 외에 누구리요’ 이 말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문초하러 부르실 때만 할 말이다. 오, 하나님. 제가 보기에 나 외에는 죄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만한 죄인이 또 있겠습니까? 이 말이다. 바울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나 외에는 죄인 중에 괴수가 없다! 나 같은, 나만한 죄인이 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