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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화) 말씀묵상(렘 3:6~18)
darling0691
2017-09-19
1646
2017년 9월 19일(화) 말씀묵상 본문 : 예레미야 3장 6~18절
(6) 요시야 왕 때에 주님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배신한 이스라엘이 한 일을 보았느냐? 그가 높은 산마다 올라가서 음행을 하였고, 또 푸른 나무가 있는 곳마다 그 밑에서 음행을 하였다. (7) 그래도 나는, 그가 이 모든 음행을 한 다음에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려니,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신실하지 못한 그의 아우 유다까지도 언니의 변절을 보았다. (8) 유다는, 이스라엘이 나를 배신하고 음행을 하다가, 바로 그것 때문에 나에게서 내쫓기는 것과, 이혼장을 쥐고 내쫓기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신실하지 못한 아우 유다가 두려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도 가서 음행을 하였다. 그것을 내가 직접 보았다. (9) 그는 음행하는 것을 가벼운 일로 여겨, 그 땅을 더럽히고, 심지어 돌과 나무를 음란하게 섬겼다. (10) 이런 온갖 음행을 하면서도, 배신한 자매 유다는, 건성으로 나에게 돌아온 척만 하고, 진심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나 주의 말이다." (11) 주님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이스라엘이 나를 배신하였다고 하지만, 신실하지 못한 유다보다는 낫다. (12) 너는 북쪽으로 가서, 이 모든 말을 선포하여라. 배신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다시는 노한 얼굴로 너를 대하지 않겠다. 나는 자비로운 하나님이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노를 영원히 품지는 않겠다. (13) 다만, 너는 너의 죄를 깨달아라. 너는 너의 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서, 푸른 나무마다 찾아다니며, 그 밑에서 다른 신들에게 너의 몸을 내맡겼으며, 나에게 순종하지 않았다. 너는 이것을 깨달아라. 나 주의 말이다." (14) "나를 배신한 자녀들아, 돌아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의 보호자다. 내가 성읍마다 한 사람씩, 가문마다 두 사람씩 택하여, 너희를 시온 산으로 데려오겠다. (15) 그 때에 내가 마음에 맞는 목자들을 너희에게 세워 주겠다. 그러면 그들이 지식과 훈계로 너희를 양육할 것이다. (16) 그 때가 이르러서,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지면, 아무도 다시는 주의 언약궤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그것을 다시는 마음속에 떠올리지도 않을 것이며, 기억하거나 찾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필요도 없을 것이다. (17) 그 때에는 누구나 예루살렘을 주의 보좌라고 부를 것이며, 뭇 민족이 그리로, 예루살렘에 있는 주 앞으로 모일 것이다.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살지 않을 것이다. (18) 그 때에는 유다 집안과 이스라엘 집안이 하나가 되어서, 다 같이 북녘 땅에서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에게 유산으로 준 땅으로 들어갈 것이다."
1. 본문 이해 -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높은 산, 푸른 나무 있는 곳마다 가서 그 밑에서 우상을 숭배하였다. 하나님은 인내로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6절). 골수까지 우상숭배에 깊이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남 유다는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북 이스라엘의 전철을 되밟고 있었다(7~8절). 남 유다의 영적 음행은 북 이스라엘과는 비교할 바도 아닐 정도였다(9절). 더 많은 사랑과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성으로 회개하는 척 흉내만 낼뿐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10절). - 하나님은 이미 멸망한 북 이스라엘에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예레미야에게 명령하신다(12절). 북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고 자비를 베푸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우상숭배 한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이키라고 말씀하신다(13절). 주님은 배신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여 품으시고 돌이키기를 바라며 끝까지 그들의 남편이요 보호자가 되시겠다고 하신다(14절).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회복의 은혜를 베푸시고 신실한 목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게 하겠다고 하신다(15절). - 하나님은 미래에 회복하게 되는 시대의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16~18절). 먼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땅에서 번성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언약궤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다는 것이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데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예배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회복의 시대에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보좌가 되어 뭇 민족이 그리로 모이게 될 것이라 하신다.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가 될 것이라 하신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는 새 시대에 대한 예언이며, 신약 교회의 형성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나의 묵상과 적용 - 하나님의 말씀은 내 삶의 인도자이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 모두가 그러한 삶을 살았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도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의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인 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빚어가는 핵심 재료이기도 하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 세우는 것은 오직 말씀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의 목회를 가능케 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의 원리를 찾고, 그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 나의 목회이어야 하기에 말씀이 없이는 안 된다. 특별히 나의 설교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말씀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이 설교준비의 필수조건이겠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진리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하나님이 열어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레미야에게처럼 나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되기를 사모한다. 그리하여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말씀을 선포할 수 있기 원하고,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순전한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사람의 귀나 즐겁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영혼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러한 말씀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 아침,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하는 장면을 통해 이러한 간절한 소원을 성령께서 내 마음에 부어주시는 것을 느낀다.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가 될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신하여 가장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장본인이었다. 목회의 현장에서 수도 없이 경험한 것이지만, 은혜를 가장 많이 베푼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 그대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형국이다. 정말 아프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 배신의 상처와 아픔으로 인하여 수도 없는 날들을 잠 못 이룰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러한 자까지 품는 것이 목회임을 안다. 하나님이 배신자 유다와 이스라엘을 끝까지 품으시며 남편이 되어주시고 보호자가 되어 주시듯 말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성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끝까지 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주님이 다시금 상기시켜 주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바라심이라 믿는다. 그런데 오늘, 왜 이런 말씀을 주시는 것일까? 혹 지금 내가 품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미래에 있을 가능성에 대비하라고 주시는 말씀인 것일까? 분명한 것은, 어떠한 경우이든 간에 하나님이 몸소 보여주시는 이 포용과 용납의 마음을 내가 한시도 잊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주님이 그러한 넉넉한 마음을 나에게 충만히 내려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