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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
이병철
2017-07-26
1292
(민수기 20:14-29,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다. 40년 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의 불순종 사건으로 감수하게 된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이제 마치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연수를 세기 전에 하나님께서 정확히 헤아리고 계셨다. 하나님은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의 진행 방향을 가나안으로 향하게 하셨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에돔을 통과해야 했다. 에돔은 이삭의 첫째 아들이요 야곱의 형인 에서의 자손이다. 500여 년 전의 그 혈연으로 ─그것은 얼마나 먼 관계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에돔의 충돌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500여 년 전에 에서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시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수백 년 동안 관계를 맺지 않았던 이 아주 먼 친족에게 예를 갖춘다.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 이스라엘의 통과를 양해해주기를 요청했다. 그것은 매우 신사적인 제의였다. 이스라엘은 에돔에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 보장하며 지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비를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돔 측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이스라엘은 역사적인 근거를 들어 평화로운 통과를 부탁하였지만 에돔은 야기될 수 있는 불편함을 들어 거절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그들에게서 돌이”켰다. 이스라엘은 부탁할 때부터 거절당할 때까지 그 근거가 되는 역사적인 혈통관계에 충실하였다. 당초에 바랐던 일이 이뤄지지 않으니까, 즉 수가 틀리니까 갑자기 공격적인 자세로 돌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신분과 관계와 논리에 일관되게 충실했다. 이 관계는 에돔이 자신들의 제의를 들어줄 때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전혀 위협하지 않았다. 철저히 에돔의 의중을 존중했고 아무리 정당해도 자신들의 주장을 억지로 관철시키려 들지 않았다.
이것은 성도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모범이 된다. 평화적인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수께서 복되다고 하실 “화평하게 하는 자”를 이스라엘은 이미 구현하였다. 이스라엘은 자칫 빠질 수 있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성공주의, 실적주의에 연연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신사적으로 제의한 것이므로 거절당하며 우회할 것이었다. 신사적인 제의 자체를 명분과 정당함으로 주장하여 거절의 결과를 부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세상에서의 관계는 거의 다 세력 다툼의 관계다. 누가 우위가 되는가, 누구의 뜻이 관철되는가, 이런 것에 좌우된다. 여기서 양보나 화평이나 신사적인 배려는 패배요 실패요 열등함으로 간주되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님 승천하신 후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이 살았던 모습과 똑같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끝까지 친절한가, 신사적인 태도를 끝까지 유지하는가, 내 뜻의 관철이나 당장의 응락이 아니더라도 끝까지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는가? 아닌 것 같다. 아, 도중에 깨진 많은 관계들, 잃은 사람들. 혹 “그들에게서 돌이”켜도 마음에 분노를 품고 응어리를 안고 잠재적인 적대관계로 돌아서게 된 경우들... 참으로 계획의 달성과 형통보다도 세상에서 성도의 당당하고 친절하고 신사적이며 일관된 태도와 품격이 더 중요하다.